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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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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 학교에 늦은 참새들한테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학교 가는 길에 문득 발견한 개울물에 파다닥 목욕도 하고 텅 빈 애벌레 집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도 하고 솔방울 속의 씨앗을 쏙쏙 빼먹다가 쇠박새랑 푸닥거리 벌이다가 직박구리한테 쫒겨나도 호기심 많은 참새의 눈에는 아직도 궁금한 것투성이다.
[자작시]구름은 그렇게 많이 울면서 점점 더 행복해질까? 그녀의 감정은 풍부하다 눈물을 흘리거나 호통을 칠 때만 우리는 그녀의 눈치를 보지만 뭉게 뭉게 피어나서 양떼처럼 평온할 때나 새털처럼 행복할 때도 그녀의 표정을 누구도 봐주질 않으니 눈물을 머금고 볼에 바람을 넣은 채 실컷 째려보다가 별안간 고함을 지르고 푸닥거리 한판을 끝내고 나면 알 수 없는 개운함과 해방감에 후련하게 털어낼 수 밖에...
[자작시]누가 내 자부심의 문들을 부수라고 나에게 명령했나? 글쎄다. 십 수년 전 학창 시절의 성적표 때문인가. 덜떨어진 선생의 한심한 가르침 때문인가. 이불을 차는 부끄러운 실수 때문인가. 오늘을 무료하게 날려 보냈기 때문인가 본질을 향해가지 못하는 느낌 때문인가. 꿈을 잃고 우뚝 서버렸기 때문인가. 누가 지나간 과거와 오지 않을 미래를 붙잡으라고 내게 명령했나. 누가 내 자부심의 문들을 부수라고 나에게 명령했나.
[자작시] 만일 모든 강이 달콤하다면 바다는 어디서 그 소금을 얻지? 반짝 반짝 햇살과 산을 오르는 나무꾼의 땀방울 달콤! 깡총 깡총 토끼가 수풀에 몰래 싼 오줌도 달콤! 대롱 대롱 매달린 메주로 정성스레 쑨 된장과 간장도 달콤! 바다는 어디서 그 짭짤한 소금을 얻지?
[자작시]나무들은 왜 뿌리의 찬란함을 숨기지? 나는 뿌리가 부끄럽다. 뿌리의 생김새는 흉측하고 징그럽기 짝이 없다. 음습하게 흙 사이를 파고들며 증식하고 지멋대로 뿌리에 뿌리가 돋아 뻗어가고 그 뿌리에 또 뿌리가 돋아 일대를 뒤덮는다. 어쩌다가 흙 밝으로 뿌리가 슬쩍 고개를 내밀 때는 너무도 창피해서 얼른 집어넣고 싶지만 이놈의 뿌리는 불호령에도 꿈쩍도 않으니 그저 가지를 흔들어 이파리로 살짝 덮을 수 밖에 나도 잘 알고 있다. 뿌리는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부지런한 것을 내가 사랑해야할 나 자체이고 근원이라는 것을 그래도 내가 못나고 모나서 이런 것을 어쩌겠는가. 나에게 왜 뿌리의 찬란함을 숨기냐고 묻기 전에 니들부터 아름다운 가슴과 찬란한 고추를 내놓고 다녀보아라.
[자작시] 아가페('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을 보고) 오늘 내가 잊은 그 것은 너무나도 중요해서 그 누구도 몰라선 안 된다. 그렇기에 나는 이 자리에 나와서 외친다. "여러분은 중요한 일을 잊고 있어요!" "그게 뭐요?" "너무도 중요하기에 잊고 말았습니다." 여남은 시간동안 그들이 나의 대문을 두드리는 일은 없었다.
[자작시] 오늘 나는 기분 좋게 행복하고 싶다. 오늘 나도 기분 좋~게 행복해지고 싶다. 일말의 걱정도 없이 미래가 맡긴 숙제에서 벗어나 행복을 향한 질문 만을 던지고 싶다. 로아큐탄도 콘서타도 아로나민 골드도 파타아인도 네오덱스도 스카리드겔도 멜라토닌도 없이 살고 싶다. 에어컨도 제습기도 스마트폰도 이어폰도 전기 파리채도 보조 배터리도 없이 자유롭고 싶다. 투자자산운용사 시험 일정도 OPIc 시험 비용도 날 원하지 않는 회사를 향한 구애도 내가 원하지 않는 회사를 향한 구애도 코스피도 나스닥도 BTC도 ETH도 아무 것도 모른 채 눈을 감고 싶다. 그저 조르바가 가리킨 돌고래를 보며 웃음 짓고 산책 중 우연히 마주친 멧비둘기와 박새의 소리를 들으며 오늘 가장 중요했던 일은 그 것들이었다며 자랑스럽게 떠들썩거리고 싶다.
[자작시] 당신은 죽음이 체리의 태양 속에 산다고 믿지 않는가? 너도 죽음이 체리의 태양 속에 산다는 걸 알고 있구나! 혹시 삶이 참외의 바다 위에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니? 신은 목성의 여드름에서 잉태했다는 것도? 지옥은 시인의 펜 끝에서 시작된 걸 본 적 있니? 희망은 미역의 엽록소에 불과했다는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