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시 (69) 썸네일형 리스트형 [자작시] 주황은 고통, 파랑은 광기 노란색은 트럼펫, 초록색은 바이올린, 파란색은 첼로, 남색은 더블베이스 하늘색은 플루트 보라색은 바순, 하얀색은 휴식입니다. 수많은 색깔이 시끄러워 귀를 막고 눈을 뜨거나 눈을 감고 귀를 엽니다. 눈을 감아도 보이는 노란 소리에 귀조차 막아버리면 남은 것은 검정이 아닌 하양입니다. 모든 빛을 합친 것이 흰색이지만 모든 감각을 차단한 것도 흰색입니다. 나는 오늘 진하고 고급스러운 갈색을 점심으로 먹었으며 연초록색의 저녁을 먹었습니다. 참으로 은은하고 조용하지만 듣기 좋은 식사였습니다. 평소라면 형광빛이 도는 주황색 꿈을 꾸고 싶습니다만 오늘은 머리가 어지러워 진하고 맑은 남색의 밤을 보내고 싶습니다. [자작시] 무중력 그르니에의 책을 읽고 무중력을 느낀 누군가. 그에게 무중력은 불편과 편함의 양립인가 보다. 제목부터 중력인 영화 가 묘사한 무중력은 지독하게 압도되는 숨막힘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를 편안하게 하는 것은 땅에 나를 묶어놓은 중력이다. 레드가 살았던 쇼생크는 그에게 꼭 맞는 중력으로 그를 끌어당긴다. 내 산만한 시의 무중력함이 불편하기에 시의 행성이 알맞은 구절만을 당기었으면. 내가 할 일을 네가 해주었으면... [자작시]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아무리 혀 끝으로는 좋아한다고 말한들너의 표정과 말투는 진실을 말하는구나 사랑하는 그를 말할 때의 너의 상기된 얼굴과 올라간 입꼬리들썩이는 어깨를 감출 방법을너는 모르는구나. 좋아하는 것을 사랑하는 것으로 바꾸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온몸으로 설명하는 너를 통해 알게 되었다. [자작시] 우리 마음 속에는 봄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 마음 속에 있는 '봄'은 무엇을 지칭하고 있나요? 어쩌면 그것은 묵직한 짐을 이고 가는 내게 나잇살 한 덩이 더 얹는 계절 모든 것을 앗아간 뒤에 남은 덧난 바닥에 꽃잎 한 장 덮어주고 퉁치자는 계절 피딱지 그득한 가슴을 흠씬 찌르다 후시딘을 발라주던 그년이 떠오르는 계절 시작과 끝이 그리 멀리 있지 않음을 비웃듯이 확인시켜주는 섭섭한 계절 [자작시] 카네이션한테 말할까? 내가 그들의 향기에 감사하다는 걸? 너의 자태에 감사를 표한다.강렬한 붉은색의 꽃잎은 만지면 묻어 나올 듯이 진하고삐친 머리는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너의 향기에 감사를 표한다.은은하고 텁텁한 향은 네가 가진 또다른 면모를 보여주었다. 너의 의미에 감사를 표한다.특별한 의미를 담은 너의 존재가소중한 사람들과의 즐거운 날에 풍성한 행복을 장식해 주었다. [자작시] 어떻게 거북이에게 말할까, 내가 너보다 느리다는 걸? 태어난 지 400일이 돼서야 겨우 한 발짝 내디뎠다는 걸 말해주면 믿을까? 아니면 수영으로는 1미터도 제대로 갈 수 없다는 걸 말할까? 스물셋이 돼서야 첫사랑을 했다는 걸 말할까? 스물여섯이 돼서야 독립했다는 걸 말할까? 서른이 되도록 밥벌이도 못 한다는 걸 고백할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조차 표현하지 못한다는 걸 말할까. 어떻게 거북이에게 말할까? 너보다 택도 없이 느리다는 걸 [자작시] 다수결 2 : 1 "다수결을 통해 나무를 베기로 결정되었단다." "우리들의 의견은요?" "너희들은 투표권이 없단다" "하지만 이 나무의 열매가 필요한 것은 우리인데요?" "결정을 번복할 수는 없단다." "왜요?" "너도 어른이 되면 알게 될거야." "그렇다면 저는 어른이 되지 않을래요!" "나도 그럴 수 있었다면 좋겠구나" "투표권은 아이로 남지 않을 충분한 이유가 되나요?"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단다" "왜요?" "왜일까..." [자작시]네가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향기를 선물하지는 마 네가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향기를 선물하지는 마. 잠에 깨서 창문을 열 때, 향기 앞을 지나갈 때, 입은 옷이 바람에 날릴 때마다 진하고 산뜻한 나무향이 내 코끝을 울리잖아. 그 향은 언제나 내 곁에 머물고 너무나 오랫동안 날 괴롭히잖아. 내가 준 선물의 대가로 향기를 돌려주지는 마. 내가 준 선물을 넌 기억조차 못 하겠지만 네가 남긴 잔향의 무게는 온전히 내 몫이잖아. 이뤄질 수 없는 상상을 하며 네 생각에 사무쳐서 시를 써내려야 하잖아. 지나간 감정을 다시 붙잡고 끌어안을 수밖에 없잖아. 내가 떠나보낸 감정을 향기로 묶지 마. 네가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 향기를 선물하지는 마. 이전 1 2 3 4 5 6 ··· 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