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뿌리가 부끄럽다.
뿌리의 생김새는 흉측하고 징그럽기 짝이 없다.
음습하게 흙 사이를 파고들며 증식하고
지멋대로 뿌리에 뿌리가 돋아 뻗어가고
그 뿌리에 또 뿌리가 돋아 일대를 뒤덮는다.
어쩌다가 흙 밝으로 뿌리가 슬쩍 고개를 내밀 때는
너무도 창피해서 얼른 집어넣고 싶지만
이놈의 뿌리는 불호령에도 꿈쩍도 않으니
그저 가지를 흔들어 이파리로 살짝 덮을 수 밖에
나도 잘 알고 있다.
뿌리는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부지런한 것을
내가 사랑해야할 나 자체이고 근원이라는 것을
그래도 내가 못나고 모나서 이런 것을 어쩌겠는가.
나에게 왜 뿌리의 찬란함을 숨기냐고 묻기 전에
니들부터 아름다운 가슴과 찬란한 고추를 내놓고 다녀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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