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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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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심야영화 무법자 - 중앙선으로 걷기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생 때까지 집 앞 영화관에서 심야 영화를 종종 봤다. 11시에서 1시쯤에 시작한 영화는 끝나면 1시에서 3시까지 늦어질 때가 있다. 이때는 차도 없고 신호등도 주황색 점멸등으로 깜빡이고 횡단보도 신호등도 불이 꺼진다. 집에 가는 길은 5분 남짓인데 마트를 끼고 있는 영화관이라 주변 도로가 넓어 왕복 8차선 정도 된다. 이때 중앙선을 따라 걷는걸 좋아한다. 새벽의 찬 공기와 조용한 적막과 함께 넓은 도로의 중앙에 서면 개운한 해방감에 기분이 좋아진다. 소심한 일탈에서 오는 배덕감 또한 훌륭한 토핑이다. 생각해 보면 이런 길은 다른 곳에서는 찾기 어려울 것 같다. 앞뒤로도, 양옆으로도 탁 트인 널찍한 8차선에 차는 거의 없는, 새벽에 집까지 가뿐히 걸어갈 수 있는 그런 곳. 이젠 서울에 ..
[자작글] 지금 나한테 칭찬을 하나 해준다면 어떤 칭찬을 해주실 건가요?(in 소수책방) 작은 자격증 시험을 큰 스트레스 안 받고 적절한 시간과 신경을 배분해서 마무리 잘한 것 칭찬해. 이에 그치지 않고 동묘 시장 즐겁게 탐방하며 구제옷 구경한 것 칭찬해 이에 그치지 않고 멀리 온 김에 소수책방을 들러 예쁜 서점도 감상하고 독서까지 시도한 것 칭찬해 책이 안 읽혀서 음악으로 진정시키고 다시 읽기를 시도한 점 칭찬해 그래도 안 읽혀서 굳이 억지로 보려고 하지 않고 노노그램 한판 한 것 칭찬해 그러다 이건 좀 아닌 것 같아서 책방지기님의 질문을 시로 남기는 것 칭찬해 독서 모임 친구들에게 소수책방에 대해서 소개하고 공유한 것 칭찬해 내 현재 상황과 사건에서 웃음으로 대답한 나 자신을 칭찬해.
[고민] 죄책감 또는 의무감 (왜 글감이 말랐는가) 글을 써야 할 것 같다. 블로그 업로드할 때가 됐다. 뭔가 죄를 저지른 것 같다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 같다. 나태해진 것만 같다. 초심을 잃은 것만 같다. 3월에 1개의 글 밖에 쓰지 않았다. 그 마음이 지금 글을 쓰게 하지만 내가 가장 경계하고 있는 마음이다. 아무도 시키지 않고 나와의 약속도 아니고 뭐 대단한 것도 아닌 것에 왜 조금이라도 신경 쓰고 스트레스받는가. 내 안의 노예 감독관은 일을 참 못한다. 중요한 일과 쓸데없는 일을 구분하지 못한다. 본질에 집중하자.
[일상] 만학도는 잘 수 없다. - 허리디스크는 내게 무엇을 앗아갔나 나이 삼십 줄에 늙은 몸을 이끌고 젊은이들과 수업을 듣는 게 만만찮다. 사실 여러모로 체력은 내가 더 나은 것 같긴 한데 학우들과 다르게 내가 한 가지 못 하는 것이 있다. 다름 아닌 이다. 빌어먹을 허리디스크는 고등학교 때부터 날 괴롭히고 있다. 그때는 내 허리가 이것 때문에 나간다고 어렴풋이 생각은 했지만 딱히 관심은 없었다. 최근 척추의 신 정선근 교수님을 영접하게 되면서 내 허리 건강은 급격히 좋아졌다. 자세한 내용은 차치하고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허리에 좋은 뭘 하는 것보다 허리에 나쁜 것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간단한 예시로 땅에 떨어진 동전을 줍는다고 숙이는 1.5초 정도 찰나의 순간에도 허리디스크는 터질 수 있다. 떨어진 동전도 주의해야 하는 물에 젖은 종이 인형 같은 내 허리로 쉬는 ..
[편지] 채이에게 2024년 1월 9일 아무것도 아닌 날. 가영이가 친구에게 쓴 편지를 보니, 문득 작년에 내가 너에게 쓴 시가 생각이 나네. 그때의 졸작에 비해 지금은 혹시 더 잘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몇 자 써본다. 온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하여 모두가 너를 좋아하고, 작은 몸짓 하나, 말 한마디에 모두가 박수 쳐주고 눈 마주치는 모두가 미소 짓고 똑똑하고 어질고 부유한 엄마와 아빠가 있고.. 그런 너의 인생이 부럽다고 얘기하니 우리 엄마가 그러더구나. 니도 그렇게 사랑받으며 컸다고. 그래 그렇지. 생각해보니 나도 그리 다르지 않은 환경에서 자라 왔었더라. 남들보다 유복한 환경이라고 해서, 남들보다 편한 인생이라고 해서 내가 느끼는 내 삶의 난이도가 그렇게 낮게 느껴지진 않더라고. 그런 너의 인생도 그리 쉽지만은 ..
[작시후기] 저주 https://mssg.tistory.com/110 후기 나는, 아마 우리 대부분은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똑바로 글로 옮길 수 없는 저주에 걸렸다. 특히 나는 쓸 게 없다고 생각할 때 더욱 모르는 것과 어렴풋이 아는 것을 끄집어내어 똥글을 만든다. ‘똥글’ 보다 적합한 단어는 생각이 안 난다. 내가 이동진도 아닌데 왜 머리를 쥐어짜고 있는가. 개쓰레기 영화를 보면 개쓰레기라고 담백하게 쓰면 그만인 것을 꽤나 산만하고 잘 이해되지 않는 글 억지로 쓰려고 해도 시상이 떠오르지 않는 주제 굳이 한 꼭지를 잡고 글을 전개하려고 해도 턱턱 막히는 상황 이게 이 글에 대한 진짜 감상이다. 언젠가부터, 아니 거의 처음부터 항상 이 자리에서 글을 쓰면, 내 시를 어떻게 설명하고 해설할 지를 먼저 생각하고 있다. 틀..
[인생] 귤소수자 (feat 귤, 청포도, 샤인머스켓) 나는 귤을 좋아한다. 아주 달고 시고 단단하며 나무에서 갓 딴 듯한 신선한 것이면 더더욱 좋다. 다들 그런 줄 알았다. ======================================================================== 예로부터 잘 알려진 귤 맛있게 먹는 법이 있다. 신 귤은 손으로 주무르거나 던지면 당도가 더 오른다. 알아보니 이는 사실이며 신맛을 내는 유기산이 귤 전체에 고르게 퍼지게 되면서 상대적으로 신맛은 약해지고 단맛이 강하게 느껴지는 원리라고 한다. 귤 애호가로서 종종 이 방법을 써보았지만 그럴 때마다 귤이 맛없었다. 내가 단지 귤 뽑기를 잘못해서 맛없는 귤을 뽑은 줄로만 알았다. 그게 아니었다. 나는 신 귤을 좋아하는 것이었다. ==================..
[생각] 엄마에게 하지 못 한 말 나는 단 한 번도 죽고 싶었던 적이 없다. 다만 죽을 것 같다고 생각한 적은 있다. 만약에 2011년 11월, 나한테 아내와 자식이 있었다면 퇴사 버튼이 아닌 다른 버튼을 눌렀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적은 있다. 이런 말을 엄마에게 할 수는 없다. 엄마는 당신 탓이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에. 엄마의 생각은 잘못되었지만 내가 그 생각을 바꾸는 것은 어렵다. 내 마음을 말하지 않는 것은 쉽기 때문에 나는 항상 입을 닫는 것을 선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