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강원랜드 탐방기에서 룰렛 한번 누르는 데 2천원이 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걸 쓸 때 한번 누를 때마다 김밥 한 줄을 바닥에 버린다고 쓰고 싶었는데 쓰지 못 했다.
여기에는 두가지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김밥 한 줄은 이제 2천원이 아니다.
김밥 한 줄이 천원인 시절은 존재했고, 2천원인 시절도 존재했지만 그 다음은 없다.
요즘 김밥 한 줄은 얼마인가.
룰렛 1딸깍이 얼마이면 김밥 한 줄을 바닥에 버린다고 할 것인가.
김밥은 2500원~5000원까지 다양하게 분포한다.
김밥 전문점도 다양화되고, 사이즈도 들쑥날쑥이며, 기본 김밥의 재료도 제멋대로이다.
더이상은 김밥 비유는 쓸 수 없다. 김밥 춘추전국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다음 문제는 ‘2천원은 무엇으로 비유해야 하는가’이다.
이것을 고민하다가 생각이 나지 않아서 그냥 비유를 없애버렸다.
2천원짜리는 무엇이 있을까?
제브라 볼펜 : 구입 주기가 너무 길고 별로 와닿지 않는다.
치약 한 통 : 치약을 쭉쭉 짜버린다고 생각하면 아깝긴 하지만 뭔가 쾌감도 있다. 모욕감이 적은 점이 아쉽다.
아무래도 음식이 아니면 느낌이 안 온다.
음식을 버리는 것 자체에 느껴지는 원초적 거부감과 함께 따라오는 상실감/굴욕감/무력함/모욕감을 다른 사물로는 살릴 수가 없다.
음식에서 찾아보자.
하리보 한 봉지 : 포만감이 부족하다.
파리바게트 단팥빵 /에그타르트 : 알맞은 가격과 적당한 포만감. 다른 것보단 확실히 적합하다. 하지만 김밥 한 줄의 폭력적인 포만감과는 다르고, 한국인의 가슴을 울리지 않는다.
공기밥 두 그릇 : 정확한 가격과 든든함. 모든 것을 갖추었지만 두 그릇인 점이 아쉽다. 이 기세라면 곧 공기밥도 일부 괴랄한 음식점처럼 2천원이 되는 시대가 오겠지만, 김밥의 단일 음식으로써의 완성도와 단단함이 없다.
‘김밥 한 줄’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도대체 뭘까?
저번엔 대충 생각하다가 넘겼는데 이번엔 시간을 내어 겨우 단팥빵과 공기밥을 생각해냈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내 음식 데이터와 어휘력이 모자라 찾지 못 한 면도 있겠으나 시대에 흐름에 따라 사어가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신선한 각종 채소 및 재료와 하나씩 말아야하는 많은 노동력이 들어가는 든든하고 값싼 김밥은 김밥천국에서도 생산이 긴급 중단될 만큼 생산이 어려워졌다.
한때나마 누렸으니 만족하고 이제 보내주어야할 것 같다.
조금만 지나면 한정식과 카카오(초콜릿 원료)도 같은 절차를 밟을 것 같은데, 인건비 후려치기로 형성된 기형적인 가격 구조가 정상화되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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