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들은 불친절합니다.
과학을 설명하라고 하면 수식으로 대답합니다. 이 점이 잘못되었다고 느낀 하이젠베르크는 어떠한 언어로 대중에게 과학을 설명해야 할지 고민한 끝에 철학으로 대답했습니다. 아이고 저런... 마치 저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무식한 니들한테 어떻게 설명한들 알겠냐?’
하이젠베르크는 바이올린도 굉장히 잘 켰다고 합니다. 피아노도 잘 치고 하이킹, 등산 등 멋진 취미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하이젠베르크야, 양자역학이 뭐니?’라고 물었더니 갑자기 바이올린을 꺼내서 혼신의 연주를 한 다음. ‘이게 양자역학이야’라고 대답한 느낌입니다.
방금 바이올린 비유는 제가 이 책을 보고 나서 느낀 감정을 과장해서 웃기게 표현한 것입니다. 상황을 정확하게 설명하는 비유는 아니지만 어떤 느낌인지 받아들여졌으리라 생각합니다. 과학자는 이런 비유를 싫어합니다. 비유라는 것 자체가 현상을 명징하게 설명할 수 없고 책에서 설명하듯이 언어와 단어는 시간에 따라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과학자들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지만 조금은 서운합니다.
읽었다는 것은 어떻게 정의해야할까요. 일단 저는 이 책의 활자를 다 눈으로 보긴 했습니다.
페이지를 끝까지 넘겼고,
모르는 단어를 이해하기 위해 구글을 검색했으며,
책을 이해하기 위해 30분짜리 유투브를 봤습니다.
그럼에도 내가 책을 읽었는가라고 물으면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 책을 적절한 속도로 읽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 선험적 지식 : 경험하지 못 하고도 알 수 있는 지식' ㅇㅋ,
- 코펜하겐 해석 : 파동과 입자로 존재하다가 하나가 관측되면 하나가 붕괴된다 ㅇㅋ,
- 상보적 : 상호보완적이라는 뜻이겠지? 맞네 ㅇㅋ
- 데카르트이분법유물론적원인교조적실재론형이상학적실재론관념적초구조체변증법적유물론배위공간질료로렌츠불변생물학의기작에테르... : 음.. ㅇㅋ;
스무 페이지 정도가 지나고 이 모든 단어가 한 문장 또는 한 문단에 나왔을때 저는 되돌아가서 다시 보아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차근차근 아까 공부한 단어와 단어들의 관계를 다시 한번 정의하고 정리하고 살펴봐야 하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이 책을 충분히 음미하지는 못 하였습니다.
이 책을 보면서 조금 무력해졌습니다. 나는 꽤 과학을 좋아하는데, 나는 철학도 조금 좋아하는데, 나는 논리학도 좋아하고 배우는 것도 좋아하는데... 이것저것 다 맛은 봤으나 이 책은 지금의 저에겐 허락되지 않은 책인 것 같았습니다. 제가 쌓은 작고 귀여운 지식의 부스러기들과 '선험적 지식'만으로 이 책을 후루룩 읽어 나가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뉴비 절단기]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게임 용어인데요, 너무 어려워서 초보자(뉴비)들이 게임하는데 더이상 진행하지 못하게 하는 어려운 스테이지나 보스를 뜻합니다. 이 책은 제게 그러한 책이었습니다.
물리와 철학이라는 인류의 영원한 과제를 담은 책 제목에 걸맞지 않게 게임 용어로 비유나 드는게 조금 수치스럽고 부끄럽습니다.
어려운 책을 보면 보통 덮어버리거나 제 무지함을 외면하기 위해 저자를 비난하곤 합니다만 오늘은 그럴 수가 없어서 끝까지 보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코미디나 한 줄 준비했습니다.
오늘 제가 준비한 것은 방금 들려드린 5분짜리 독백이 다구요. 나머지 시간은 즐겁게 경청하겠습니다.
'독후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독후감] 워스트 레코드 (1) | 2024.07.08 |
---|---|
[독후감] 좋은생각 4월호 (0) | 2024.04.26 |
[독후감] 비가 오면 열리는 상점 - 소설에서 자꾸 빠져나오게 하는 소설 (0) | 2024.04.25 |
[독후감] 개소리에 대하여 (on Bullshit) (0) | 2024.03.02 |
[독후감] 한글 꽃이 피었습니다. (0) | 2024.0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