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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독후감] 갈증 - 아멜리 노통브

오랜만에 내 최애 작가 아멜리 노통브의 글을 보니 참 좋다.

 

내가 좋아하는 아멜리 노통브는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었지.

 

이런 단어를 쓰고, 이런 감정을 묘사할 수 있는 작가였지.

 

이번 책은 예수의 감정을 1인칭에서 묘사하는 짧은 소설인데 역시 글의 맛이 훌륭하고 감정적으로 공감이 되었다. 예수라면 그렇게 생각했을 법했고, 작가의 묘사는 아름다우면서도 설득력이 있었다.

 

기독교인들이 이 책을 본다면 예수를 모욕한다고 느낄지가 궁금했졌다.

 

심지어 일부 기독교인들은 본인들을 모욕한다고 느낄 수도 있을만큼 예수를 처절하게 인간적으로 묘사했다.

 


 

(십자가 형을 받은 뒤)“나는 내가 그렇게 죽게 되리라는 걸 알지 못했다. 그것은 대수롭지 않은 소식이 아니었다. 나는 먼저 고통을 떠올렸다.”

 

“이제 나는 두려움을 발견하고 있었다. 누구나 가지는 추상적인 두려움, 죽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인 두려움, 십자가형에 대한 두려움을”

 

“딱 한 번, 나는 껍질의 권능을 잘못 사용했다. 무화과가 아직 익지 않은 때에 무화과를 먹고 싶은 욕망이 커서, 나는 나무를 저주했고, 그 나무가 영원토록 열매를 맺지 못할 거라고 선고했다. 그러고 나서 별 설득력은 없지만, 단지 비유를 했을 뿐이라는 핑계를 댔다.”

 

“내 옆에 못과 망치들이 놓이는 것을 본다. 숨이 턱턱 막힌다. 그 정도로 겁이 난다. ~ . 손바닥에 못이 박히는 것은 거기 매달리는 것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 나는 서서히 익숙해질 거라고, 신경이 그런 끔찍함을 오래 느낄 수는 없을 거라고 속으로 되뇐다. 하지만 곧 신경이 능히 그럴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책 말미에 옮긴이의 말을 보니 역시 출간 직후 신성 모독이라는 후기에 시달려서 본인의 ‘순수성’을 입증하는 데에 주력했다고 한다. 한국 기독교인만 그렇게 지독한 게 아닐 테니 꽤나 고생을 했을 것이다. 캣맘에 시달리는 야생 조류 유투버나 개빠들에게 공격받는 강형욱과 같은 느낌이었겠지.


“내가 비장의 카드로 간직했던 갈증이 떠오른다. 비장의 카드, 그것은 탁월한 생각이었다. 목구멍이 타는 것 같은 극도의 고통이 갈가리 찢긴 내 육신의 참담함에서 나를 벗어나게 해준다.”

 

갈증.

 

이 책의 제목이다.

 

타는 목마름으로 다른 고통을 피한다는 생각은 참 놀랍다.

 

아마 불현듯 갈증과 예수를 연결 짓는 생각이 떠오르면서 이 소설을 집필하지 않았을까 싶다.


 

“아버지, 당신이 창조한 것이 당신을 넘어섰습니다. ~ . 당신은 하나님입니다. 당신에게 자존심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지요? 정말 자존심이 문제인가요? 자존심은 나쁘지 않습니다. 전 거기서 우스꽝스러운 기질, 즉 과민함을 봅니다.

 

그래요, 당신은 과민합니다. 말해 볼까요? 당신은 다른 신들을 참아 내지 못할 겁니다. ~ .

 

아버지, 왜 그렇게 옹졸하게 구세요? 제가 신성을 모독한다고요? ~ .저는 당신을 비판하는 겁니다. 제가 언제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나요? 전 당신을 원망합니다. 당신에게 화가 나 있습니다. 사랑은 이런 감정들을 허락하죠. 당신이 사랑에 대해 뭘 아시죠?

 

바로 그것이 문제입니다. 당신은 사랑이 뭔지 모릅니다. 사랑은 하나의 이야기예요. 사랑을 이야기하려면 몸이 필요하죠. 제가 방금 말한 것은 당신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무지한지 당신이 의식하기만이라도 한다면!”

 

 

성경을 잘 아는 사람들이 비판하는 하나님의 모습을 예수의 시점으로 얘기한 점이 참 재밌다.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은 괴팍하기 그지없다. 이걸 하나하나 서술하기엔 내 역량이 부족하여 생략한다.

 

이런 싸움을 철저하게 인간적으로 묘사한 것에 속이 개운해지는 쾌감이 있었다.

 

리처드 도킨스에서 얻는 쾌감과는 또 다른 형태로 신성 모독의 즐거움을 주었다.

 

유머 감각이 있는 사람들의 신성 모독만큼 즐거운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