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보다 탐욕적인 마음으로 아빠에게 간이식을 한다.
랜덤 지구인 100만 명 죽이고 우리 아빠 살리기 버튼이 있었으면 그걸 눌렀겠지만 내 앞에 있는 것은 내 간을 떼주고 아빠 살리기 버튼뿐이기에 이 버튼을 누른다. 좋은 인간이거나 좋은 아들이어서가 아니다. 이 결정은 아빠를 위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나의 쾌, 나의 기쁨을 위하여 결정하였다. 아빠는 나에게 그런 기쁨을 주는 사람이며 이런 결정을 하게 한 아빠로서의 자신을 자랑스러워하면 된다. 혹시 우리 아빠가 죄책감에 ‘조금만 덜 사랑할걸. 조금만 덜 잘해줄걸’이라고 생각하는 아빠는 아니겠지? 시간을 되돌려도 우리 아빠는 아마 그럴 수 없었을 테니 그런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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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의생을 보면 수많은 간이식 사례가 나오는데 아빠는 어떤 사람에 가까울까. 적어도 아빠가 수술 전에 자식 간을 받을 수 없다고 도망치거나 숨는 사람은 아니었다. 초반에 잠시 떼를 쓰긴 했지만 ㅎㅎ; 이식받고 난 뒤의 아빠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하다. 슬의생 한 번씩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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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죽기 전에 쓰는 유서 같은 것이 아니다. 그저 번지점프를 뛰기 전에 쫄보가 남기는 마지막 메시지 같은 것이다. 그 쫄보는 다시 돌아와서 결국 지가 울면서 찍은 마지막 메시지를 다시 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부정할 수 없는 쫄보인걸. 쫄았다는걸 인정할 수 있는 쫄보가 부정하는 쫄보보단 낫지 않을까?
옛날엔 기증자도 많이 죽었지만 요즘은 잘 죽지 않는다. 그리고 한국은 세계 최고의 간이식 기술이 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예수쟁이들이 ‘믿습니다’를 반복하는 것처럼 나는 저 문구를 반복하여 되뇌고 있다. 나한테 일어나면 그건 100%니까. 솔직히 쫄린다. 나는 충분히 강하기에 쫄림을 인정할 수 있고 충분히 강하기에 기증을 결정할 수 있고 충분히 강하기에 지금도 신 따위에게 빌진 않는다.
이 편지는 잘 얘기하지 않았던 나의 여러 가지 생각을 이해해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남긴다. 일단은 누나에게 전달했지만 다시 눈을 떠서 내가 아빠에게 전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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