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다. 아이들의 글을 보는 것도. 그 아이들을 진정으로 이해하려 노력하는 선생님의 글을 보는 것도 재밌다. 초등교사인 지인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그 분이라면 이미 다 아는 내용이려나? 아마 아주 오래전 배우긴 했으나 실제로 실천하지는 않고 이미 잊은 내용일 것이다.
이 책은 나와 인간관계에 관한 내용이기도 하다. 아이들의 시선에서 말했지만 아이나 어른이나 똑같은 부분이 있다. ‘오늘 학교에서 뭐했니?’ 라고 하면 ‘아무 것도 안 했어요’라고 하는 것은 비단 아이뿐만이 아니다. ‘회사에서 뭐했니?’ 라고 물으면 25세 박인턴도, 30세 서사원도, 45세 손부장님도 똑같이 말할 것이다. "뭐 그냥 똑같지~"
말을 이끌어내려면 나부터 얘기해야한다. 대단한 것이 아니라 사소한 것을. “오늘은 사내 운동회가 있어서 열심히 운동했습니다.”라고 하면 다른 사람은 더욱 더 말할 것이 없다. “오늘은 8시에 일어나서 눈 뜨자마자 씻지도 못 하고 바로 택시타고 출근했어요”, “오늘 구내 식당에서 제육을 주는데 아 너무 맛 없더라고요” 등 아주 작고 하찮은 이야기를 시작하면 그 때서야 사람들이 입을 열 것이다.
“자 여러분 글을 써보세요”라고 했을 때 역시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어제, 날씨, 기분에 관해서 글을 써보세요”라고 하면 비로소 글을 끄적일 수 있을 것이다. 이 또한 잘 쓰려고 하면 막막하다. 하지만 그저 생각나는 내용을 쓰는 것은 어렵지 않다.
나는 위 내용을 화법과 스몰토크, 인터뷰 등 일상에서도 아주 중요한 부분으로 보았다. 날씨에 관한 내용도 참 좋다. 글이 쓸 게 없을 때는 날씨를 써보자. 같은 날씨는 없다. 그리고 더 세심하게 바라볼 수록 다양한 표현이 가능하다. 햇님/구름/비/눈/번개 로 모든 날씨를 표현할 수 없다. 비가 오는 건지 마는 건지 알 수 없는 날씨도 있으며 단순 비라고 하기엔 쏟아 붓는 장대비가 올 수도 있다. 햇빛이 쨍쨍하다가도 구름이 끼고 비가 올 수도 있고, 분명 햇빛이 내 눈을 찌르는 데도 불구하고 하늘에서는 비가 내리기도 한다. 나는 올 여름 이런 적이 세 번 있다. 내 평생에도 한 번 정도 겪었던 일인데 올해에만 세 번이 있었다. 이런 좋은 글감을 이 책을 보기 전에는 생각 못 했다.
도덕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것을 쓰는 것 역시 중요하다. 이 역시도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 또한 그래야한다. 요즘같은 PC시대에 PC적이지 못한 발언과 표현은 상당히 제한된다. 어른들도 자유롭게 표현하고 말할 수 있어야된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PC주의자들도 아이들만큼은 자유롭게 표현하고 말할 수 있기를 바라지 않을까? 8세 백인 아이가 깜둥이 니그로들과 같이 학교 다니기가 싫다고 할 수도 있지 않은가. 이 정도까지의 자유는 아닌가?
책에 재밌는 내용이 많아서 너무 많이 쓴 것 같다. 이하 책 내용이다.
내가 한 말이 그대로 글이 될 수 있구나, 내가 생각한 걸 그대로 쓰면 글이 되는구나
[책 내용 발췌]
p32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떤지 알고 싶으면 아이들이 쓴 글을 읽어봐라. 단 어느 대회에서 입상한 글 말고 . ~ . 입상한 글을 보면 자연스럽게 비교를 한다.”
p34 “초딩에게는 또래가 쓴 글을 좋은 글을 보여주면 나도 써볼래 하는 마음이 생기게 된다.”
→ 나도 너무 잘 쓴 명작들을 보며 글 써서 먹고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싹 없어졌다. 조르바, 고래, 살인자의 건강법 등 ㅎㅎ;
p37 (20살 된 작가 딸 왈)“내가 글 쓰는 걸 좋아해서 참 다행이야. 글을 쓰면 복잡한 것도 정리가 되고, 하고 싶은 것도 자꾸 떠올라. 나는 답답하고 화가 날 때면 글을 쓰면서 푸는 것 같아” ~ “나는 어릴 때 엄마가 쓴 내 이야기를 읽는 게 재미있었어!”
p42 “평가와 판단이 아니라 글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이해해주고 공감해주면서 글 쓰는 재미를 느낀 것 같다. 아이에게는 가장 큰 ‘보상’이다.”
p49 “(아이와 책을 볼 때) 궁금해하지도 않을 낱말을 하나하나 가르쳐주다가 책 읽는 재미를 빼앗아버릴 지도 모른다. 아이도 알고 있다 ‘지게’ ‘시루’ 가 대충 옛날에 쓰던 옛날 물건이라는 것을. 근데 그걸 알기보다 그냥 이야기가 궁금해서 넘어가고 싶을 때도 있다.”
p54 아이가 글 쓰기 싫어하는 이유
- 요즘은 너무 일찍부터 연필을 잡고 글씨를 쓰게 한다. 아직 손힘이 약해서 손이 아프다.
- 아이가 봐도 자기 글씨가 못났다.
- 맞춤법에 맞게 써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쓰기가 싫다.
- 어떤 것이 쓸거리인지 잘 모른다.
- 가만히 앉아있는 그 자체가 힘들다.
- ‘일기’ 때문에 불쾌한 경험이 있다.
p62 “내 머릿 속에는 쓸 것이 가득한데, 그 말을 쓰려면 어떻게 쓰는 게 맞는지 고민하기 때문에 편하게 쓸 수가 없다. 결국 ‘쓸 게 없다’, ‘글쓰기는 힘들다’로 결론지어버린다.” ~ “맞게 쓰지 말자는게 아니다. 글쓰기의 시작이 맞춤법이 되어서는 안 된다.”
p68 “일기의 내용을 바탕으로 “왜 이렇게 행동했니” “친구한테 그러면 안 되지”, “이런 말은 나쁜 말이야” 하면 결국 일기 속에서도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한 글을 쓰기 쉽다.”
→ 내용을 검열하지마라 이말이야.
“일기를 보지 못 해서 아이랑 소통이 안 된다면, 이미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다.”
p74 “아이가 글자를 알자마자 해야하는 것이 받아쓰기, 알림장, 일기라면 당연히 글 쓰기가 싫지 않을까?”
p76 “요즘은 나부터 먼저 ‘난 방학 때 어디 갔다왔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영화를 티비로 다섯 편이나 봤는데 참 좋았다. 8시 전에 일어나서 책을 보려고 했는데 9시에 일어났다. 등의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 아이들도 신나서 말문이 열린다.”
개미 식당 - 승민
오늘 개미 식당을 열었다.
메뉴는 꿀밥과 설탕 한 컵, 박하사탕이다.
근데 실망! 실망!
개미가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박하사탕을 내가 다 먹어버렸다.
다음엔 개미 식당을 엄청 많이 열어볼 거다.
그때는 개미가 배고플 때까지 기다려야겠다.
p84 “승민이가 병 안에 사탕이랑 설탕을 넣어두고 바닥에 두길래 그러지말라고 했더니 개미 뭐시기라고 했다. 알고보니 승민이는 개미 식당을 차린 것이었다. ~. 어른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 라며 혼을 낸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는 나를 드러내는 소리이기도 하다.”
p98 “심심해야 자신도 남도 내 주변도 돌아볼 여유가 생기고, 심심하다고 충분히 느낄 때 비로소 새로운 상상과 표현이 떠오른다.”
p100 “긴 글을 읽고 내용 파악하기는 6학년 때 배운다. 이제 막 글자를 읽기 시작한 1학년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마저도 2~3학년이 되면 조용히 읽으라고 강요한다. “나이가 몇 개인데 아직도 소리내서 읽느냐”고 핀잔도 준다. 저학년 아이에게 눈으로 읽어서 내용 파악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p127 “때때로 가족의 슬프고 아픈 이야기를 글로 쓸까봐 걱정하는 어른이 있다. 하지만 쓴다는 것은 말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픈 일을 글로 쓸 수 있다면, 그 자체가 아이에게 치유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니 오히려 고마워하고 노력해야 한다. 가족이 글감이어야 하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p144 “말한대로 적는 것은 어렵다. 교실의 병아리를 보고 아까 까지만 해도 ‘물을 마시면 꼭 위를 올려다본다’, ‘두 마리가 꼭 붙어 있다’, ‘사료를 오물오물 씹어 먹는다’ 등을 말했던 아이들이 ‘병아리가 귀엽다. 한마리는 크고 한마리는 작았다. 노란색이다’ 이런 것 밖에 쓰지 않았다. 방금까지만 해도 ‘병아리가 무서운가봐요, 자꾸 둘이 붙어 있어요’ ‘밤에 고양이가 오진 않겠죠?’ 라고 했던 애들이 그런건 쓰지도 않았다.”
“행동한 것도 마찬가지다. 쓴 건 ‘만졌다, 봤다. 넣었다’ 정도이다. ‘조심조심 박스에 넣어줬다’, ‘물을 납작한 그릇에 담아줬다.’ ‘과학실에서 전구를 들고 와서 따뜻하게 해줬다.’ 등도 해놓고 쓰지 않았다.”
“1학년에게 본대로, 말한대로, 행동한대로 쓰라고 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계속 그러라고 말해주자”
p270 Q. “아이들은 책을 언제까지 읽어줘야하나요. 책을 읽을 줄 아는데 자꾸 읽어달라고해요”
A. “아이는 내용을 원하는게 아닙니다. 함께 읽고 싶은 거에요. 학교에서도 책을 읽어주면 자주 듣는 말이 ‘저번에 읽어봤는데 같이 보니까 더 재밌어요’ 같은 말들입니다. 읽어주는 시기나 기한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
p280 [확인하듯 따지지 말고 궁금한 것을 묻자]
“아이가 열매를 따서 말벌을 공격했다고 글을 썼다. 이 글만 보고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다. 말벌은 어디에 있었는지, 무슨 열매로 어떻게 공격했다는 것인지, 무섭지는 않았는지, 성공했는지 등을 물으니 열심히 대답해 주었다. 친구들과 작전도 짜고 협공도하고 드디어 벌을 물리쳤으니 얼마나 재밌었겠는가. 그런데 막상 그 상황을 생생하게 쓰지 않았다. 어른들도 종종 그럴 때가 있다. 엄청 재밌는 영화를 보거나 즐거운 여행을 다녀와서 누군가에게 얘기해주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할 때가 있다.”
[단어]
- 마중물이 되다: (비유적으로) 어떤 일의 밑바탕이나 시발점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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