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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취재]사이비 종교인이랑 쓸데없는 얘기만 하고 온 썰 -2

1편 https://mssg.tistory.com/55

 

집에 와서 생각을 했다.

 

그들에 대한 어떤 종교적인 정보를 듣지 못 했기 때문에 어떤 종교인지 유추할 수 없었지만 단 한 가지 단서가 있었으니 그 것은 ‘접근 방식’이다.

 

‘웹 드라마 작가’라는 설정의 사이비가 세간에 횡행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조사를 했다.

 

하지만 내가 재밌다고 생각했던 이 방식은 너무 너무 흔한 방식이라서 수많은 종교에서 쓰고 있었다.

 

바리에이션으로는 소설 작가, 웹툰 작가, 방송국 막내작가 등등 이미 클리셰가 된 방법이었다.

 

사실 이 수법을 알리기 위해 글을 쓴 것인데 공쳤다.


 

아무튼 번호를 주고 다음날에 만나기로 했다.

 

접선 장소는 내 집 근처가 아닌 몇 정거장 떨어진 역 앞이었고, 만나기 직전에 내 친구 단톡방에 정확히 이렇게 보냈다.

 

‘내가 실종되면 지금 만나고, 어제 9시 30분에 만났던 그년 둘이 범인이다.’

 

편의상 이 둘을 이제부터 순자랑 덕선이라고 하겠다.

 

아참 이전 글에서 중요한 내용을 하나 빠뜨렸다.

 

‘그래서 예쁘냐?’

 

내 친구한테 이 얘기를 했을 때 받은 첫 질문이다.

 

순자는 나름 귀엽게 생겼고 덕선이는 뭐 그냥 평범하게 생겼다.

 

외모 때문에 따라갈 정도는 아니고, 또 외모 때문에 얘기하기 싫을 정도도 아닌 그냥 그정도였다.


 

순자, 덕선이랑 만나서 카페로 향했다.

 

인터넷에서 많이 봤던 사이비 중에는 맥도날드가서 콜라 한잔 사달라고 해놓고 두 명이서 세트를 시킨다던지 하는 얘기를 본 적이 있다.

 

카페에 도착하자 자기가 살테니까 먼저 자리를 잡아 놓으라더라.

 

‘만난 컨셉이 캐릭터 조사니까 그래도 양심은 있구나’


 

얘기는 평범하고 일상적이었다. 그래서 재밌었다.

 

2시에 만나서 4시까지 얘기를 했으니...

 

블로그에 쓴 내 여러 이야기와 생각, 진로 가치관 인생 종교 사이비 등 다양한 얘기를 했다.

 

이 때까지 덕선이, 순자는 종교나 교리를 포함하여 제사, 조상, 하나님, 예수님 등 관련 단어를 단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내가 사이비 얘기를 너무 많이 해서 차마 입을 못 뗀 것이지만 그냥 편안하게 얘기를 많이 나눠서 좋았다.

 

나는 이때쯤엔 얘네가 진짜 사이비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너네가 왜 사이비처럼 보였는지, 앞으로는 캐릭터 조사를 하려면 어떻게 접근해야되는지 팁까지 다 알려줬다.

 

그러다 순자는 선약이 있다며 먼저 일어났고 30분 쯤 후에 덕선이가 운을 띄웠다.

 

 

덕선 : ‘주변에 동아리방이 있는데 혹시 한번 가보겠냐. 아이스티 타줄게’

 

나    : ‘뭐하는 동아리인데?’

 

덕선 : ‘마음공부'를 하는 곳이다.

 

.

 

.

 

.

 

만난지 2시간 만에 덕선이는 처음으로  이상한 단어를 꺼냈다.


이 글을 보는 다른 분들은 수상한 2인조가 접근하면 진작에 잘 쳐냈을 것이기 때문에 딱히 필요없을 수도 있지만

 

이 ‘마음공부’라는 단어는 알아두면 좋다.

 

살아가면서 주변 지인, 친구, 가족들이 사이비를 전도하는 경우도 굉장히 많다.

 

그런 친구가 어떤 모임을 같이 가자고 하는데 뭘 하는 지 명확히 얘기는 안 해주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마음공부’를 한다고 하면 이건 명확히 불교계열 사이비 종교이다.

 

나는 이들을 대순진리회 계열의 아종/분파로 추측하지만 아닐 수도 있다.

 

대순진리회는 ‘도를 아십니까’로 대표되는 전도를 주도한 세력이고, 제사를 지내야한다는 얘기는 대부분 이쪽 계열의 종교이다.


나는 덕선이를 따라 나섰다.

 

덕선이가 오늘 만남의 장소를 덕선이와 나의 중간쯤인 위치인 상도역으로 임의로 정했다고 했는데 역시 본진이 있는 곳이었다.

 

인터넷에서 보기로는, 좁은 지하방으로 들어가면 좁은 방 안에 십 수명이 옹기종기 앉아있고 덩치 한 명이 문을 지키고 있으며 들어갈 때 핸드폰을 뺏긴다고 보기도 했지만 여긴 그러지 않았다.

 

꽤나 오픈된 지상 공간의 독립 건물 하나를 통으로 쓰고 있었다.

 

이 건물은 어린이집을 리모델링해서 활동방으로 쓰고 있다고 했다.

 

건물 안까진 들어가지 않고 밖에 벤치에 앉아서 얘기를 이어가려는데 옆 테이블에서도 교리를 아주 진지하게 가르치고 있었다.

 

덕선이도 가르침과 ‘마음공부’에 대해서 무슨 공덕과 업에 대해서 얘기를 꺼내는데 잘 들어오지가 않았다.

 


*

언젠가 법이 바뀌면서 전도를 할 때는 자신이 어떤 종교인지 명확히 말해야한다.

 

그래서 신천지의 이미지가 아무리 나빠도 자기들이 신천지라고 하고 전도를 시작하며, 하나님의교회, 여호와의증인 등 요즘은 다들 자기의 타이틀을 걸고 전도를 한다.

 

이들이 사이비가 아니라고 한 이유는 '종교'의 이름을 없앴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기들은 '마음공부'를 하고 있지만 종교인이 아니며 따라서 사이비가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비열하게 '우린 종교 아님'을 주장한다.

 

1편에서 말했던 '너네 사이비 같다'는 말에 순수하게 웃었던 이유는 이것 때문이다.

 

얘네는 지들이 종교가 아닌줄 안다.

*


사이비한테 상처를 받는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잘 이해를 못 했는데 그 때 내 마음이 순간 서운했다.

 

2시간 동안 진솔하고 유쾌하게 얘기 잘 나눴는데 결국 다 이 짓을 위한 거였다니 원망스러운 마음이 몰려왔다.

 

그런데 덕선이도 그렇게 나쁜 아이는 아니었는지라 나의 이런 태도에 안절부절 못 했다.

 

사이비 얘기를 너무 많이해서 얘가 본론 얘기도 못 꺼내고 얼마나 노심초사했을까 생각도 들고…

 

나는 덕선이한테 말했다.

 

‘너네 교리도 궁금하고, 사실 그걸 알아보러온 것도 없지 않아 있는데, 너한테 너무 서운하다.

 

얘기 잘 하다가 결국은 이거였냐. 속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니 얘기를 더이상 못 듣겠다.’


 

마지막으로 몇 마디 더 나누고 최후의 장난을 쳤다.

 

혹시 문 잠겨있는거 아니냐고, 밖에 덩치가 지키고 있는거 아니냐며…

 

그런 내게 덕선이는 친히 문까지 열어주며 역까지 바래다 주었고 우리의 만남은 끝났다.

 

사이비 본진까지 찾아간 내 취재는 싱겁게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