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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취재]사이비 종교인이랑 쓸데없는 얘기만 하고 온 썰 -1

 

나에겐 좋은 습관이 있다.

 

집구석에서 알 수 없는 스트레스로 머리가 복잡할 때 자리를 박차고 나와 동네 산책을 한바퀴를 돈다.

 

그러고 돌아오면 뭐 대단히 바뀐건 없지만 그래도 지속적인 멘탈 도트 대미지가 찬바람과 함께 날아가기도 하고 다시 돌아왔을 때 그 스트레스의 농도가 상당히 옅어진다.

 

이 좋은 습관은 나에게 재미난 일도 물어다 주었다.

 

토요일 오후 9시 쯤 이야기이다.

 

그날도 머리가 어지럽고 아무 의욕도 생기지 않아서 적당히 외투를 걸치고 길을 나섰다.

 

평소라면 공원 쪽 루트로 갔을 텐데 너무 자주 가서 그 반대편인 상가와 학원 등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그쪽엔 고시학원, 공무원학원, 경찰학원 등이 모여있는 곳이다.

 


 

나에겐 악취미도 하나 있다.

 

가끔 약속 사이에 시간이 잠깐 빌 때 사이비나 유니세프 등에 잡혀서 얘기를 듣곤 한다.

 

종교는 없지만 나에겐 호기심이 많다. 아주 많다.

 

사이비 종교인이라면 그 종교의 주된 주장이나 기존 종교와의 차이가 궁금하다.

 

나는 개신교와 성경에 대해서 나름대로 잘 알고 있는데 신천지, 통일교, 하나님의교회 등은 개신교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 비슷하다.

 

성경계열 사이비들은 감사하게도 기독교와의 차이점을 주로 전도 자료로 사용하기 때문에 잠깐만 길에서 들어도 비교하기가 아주 용이하다.

 

자선 단체라면 그들의 현재 주요 사업과 후원금 사용처에 대해서 들을 수 있다.

 

내가 본 단체는 항상 아프리카 흑인 어린이가 나왔던 것 같은데 특정 지역에 지진이 나거나, 내전이 일어나는 등 재해가 일어나면 특수하게 모금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날도 사이비 두 명이 내게다가왔다.

 

대부분 한국인이라면 5미터 밖에서 내 반경 안으로 들어올 때 주변 시야로 봐도 사이비임을 단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주 반가운 상황이다.

 

10시에 약속이 있는데 마침 시간도 있고 얘기나 잠시 나누면 재밌을 것 같아서 일부러 잡혔다.

 

그들은 여자 2인조로 한 명은 이십대 초반, 한 명은 삼십 대 초반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본인들을 소개했다. 아니 내가 소개시켰다.

 

내가 소개시켰다고 한 이유는 이들은 다짜고짜 무례하게 나이랑 직업부터 묻기 때문이다.

 

“우리는 웹 드라마 작가 지망생인데 대본에 쓸 캐릭터 조사를 위해서 거리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유가 나름 신선해서 얘기를 하고 싶었다.


 

‘기운이 좋아 보이세요’, ‘도를 아십니까’ 였으면 뭔가 얘기도 나누기 싫었을 것 같다.

 

‘설문 조사 좀 부탁드립니다’ 였으면 조금 식상했을 것 같다.

 

하지만 웹 드라마 작가라니. 아주 트렌디하고 좋은 구실이었다.

 

현대의 기술 발전과 더불어 포교 역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한 3분 정도 서서 얘기하다가 내가 나름 맛있게 얘기를 잘하고 한놈 걸린 것 같으니까 근처 벤치에서 앉아서 얘기하자고 자리를 옮겼다.

 

‘그래 니들은 하루이틀이 아니니까 벤치 자리도 잘 알고 있겠지’

 

나는 그들에게 대놓고 사이비 같다는 얘기를 했다.

 

‘당신들 너무 수상하게 다가왔다.’

 

‘칭찬을 하는데 너무 상투적이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 같았다’

 

‘벤치로 옮기자고 해놓고 반지하 아지트로 데려가는 거 아니냐’

 

이런 나의 도발 섞인 농담에 진짜 순수하게 웃어주었다.

 

나중에 이유를 알게 되는데 그들이 진짜 켕기는 거 없이 웃었던 것은 후술하겠다.

 

나는 다신 안 볼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내 얘기가 쉬운 것 같다.

 

이것저것 재지 않고 그냥 고민이나 살아온 과정, 힘들었던 일을 막 얘기했다.

 

내가 어떻게 이겨나갔는지 지금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에 대한 얘기를 얘들은 잘 들어줬다.

 

취미도 많고 생각도 많고 고민도 많은 나의 삶에 대한 얘기는 많은 사람들이 재밌게 들어준다.

 

그래서 30분 정도 얘기를 했는데 이제 가야 되니까 내일 좀 더 얘기를 하자더라.

 

‘그럼 그렇지. 내일부터 본론 얘기를 하겠구먼’

 

하지만 나는 물러서지 않는다.

 

‘당신들이 신천지여도 상관없으니까 얘기나 나눕시다~!’

 

하니 또 꺄르륵 웃는다.

 

그리고 내일 싱겁지만 흥미진진한 만남이 이어진다.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