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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후기

[영화후기] 오후네시 - 스포o

내가 사랑하는 여자의 안위를 다른 남자가 보살펴주는 것이 참으로 고마운 일이지만, 인간은 간사하기에 100% 만족스러울 순 없다.

내가 사랑하는 소설을 영화로 만들어준 것 자체가 고맙지만, '좀만 더 잘해주지'하는 이기적인 생각이 든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의 문학을 원서로 볼 수 있는 나라.

프랑스어로 쓰인, 최애 작가의 최애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원어로 볼 수 있는 나라.

뽕이 차오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름과 돈과 명예를 걸고 영화를 제작한 감독보다 방구석 독자인 내가 더 잘 안다고 주장하는 것만큼 추한 것이 없다.

조금 서운한 장면 몇 개와, (내가 생각했을 때) 대단히 잘못된 해석 몇 개가 있었다.

왜 그렇게 만들었는지는 제작진의 얘기를 듣는다면 납득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쬐금 섭섭하다.

※여기서부터 스포주의※


> 침입자의 방문에 지쳐서, 4시 10분 전에 집을 비우고 나간 장면 <

소설에서는 눈이 쌓여있어야 했는데 ‘비’로 대체했다.

눈이 쏟아지고 있고, 누가봐도 방금 찍힌 발자국이 있었다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보자마자 공포감을 느낄 수 있고 좋았을 것이다. 영화에서는 시각적으로 집으로 오기 직전까지 남자가 있었다는 것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고, 감독도 그렇게 느꼈는지 억지 대사를 통해서 상황을 해설했다.

“으~ 이거 더러운 것 좀 봐. 그 사람 방금까지 있었나 봐. 빨리 청소해야겠다.”

눈의 부재는 그 다음날의 장면에도 영향을 주었다.

“당신들이 나가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소. 빗길에 발자국이 찍히지 않았거든”

빗길을 눈길로 바꾸기만 한다면 즉시 납득되지만, 빗길에 무슨 흔적이 남는가 생각하게 된다.

눈도 안 오는데 영화 찍는다고 눈을 쏟는 건 아마 대단히 비싸고, 어려운 작업이었을 것이다.

감독도 이러고 싶지 않았겠다는 것이 느껴져서 이해도 되고, 가슴이 아팠다. 아마 나보다 감독이 더 아쉬웠겠지.


> 차고에서의 사고와 수많은 시계 그리고 호탕한 웃음 <

이걸 내 필력과 불완전한 기억력으로 잘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꼭 말하고 싶다.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에는 늘 미친 인간이 나온다. 도저히 납득될 수 없을 것 같은 미친 인간의 정신 나간 행동이 결국은 이해되는 배경이 있고, 그에 따라 독자들에게 신선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 아멜리 노통브의 매력 중 하나이다.

내 생각에 침입자의 기행이 납득의 과정이 설명되려면, 주인공은 차고에서의 사고가 침입자의 살자시도라는 것을 알면 안 된다.

내가 기억하는 소설의 내용에 의하면 침입자를 구하고 나서 그의 집에 방문하며 발견한 수많은 시계와 일련의 사건의 조각들이 합쳐지면서, 주인공은 비로소 깨닫게 된다. 침입자가 행복의 감정을 느낄 수 없는 그저 시간의 흐름을 통한 죽음만을 기다리는 존재라는 것을.

지옥같은 육신에 갇혀 지낸 60여 년의 무의미한 세월을 보내고 드디어 용기를 내서 살자 시도를 한 것이고, 그 60년 만의 시도를 구조라는 이름으로 망쳐놓고 ‘다시 시도하면 되겠네’라는 주인공의 무책임한 말에 침입자가 박장대소를 하는 것이다. 이 웃음을 통해서 다음의 메시지가 꼭 전달되었어야 했다.

'내가 60년 만에 마음을 먹고 시도를 했는데 그걸 망쳐놓고 다시하면 되겠다고? ㅋㅋ 무책임한 놈 어이가 없네'

그리고 그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주인공은 자신의 과오를 바로잡으려, 침입자의 목숨을 끊어주려 가는 것이다. 주인공이 인간성의 상실과 분노로 인한 광적인 공격성을 가지고 살해를 하러 간 것이 아니란 말이다.


영화는 소설과 전혀 상관없는 독자적 창작물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 독자적인 변화를 통해서 도대체 뭘 보여주려고 했는지 아리송하다. 캐릭터는 밋밋해지고, 의도가 전달이 잘 되지도 않았다고 보인다.

이 중요한 장면은 왜곡 또는 해석을 통해서 너무 맛없게 표현되었다.

시계는 왜 있는지, 웃는 장면은 왜 그렇게 슴슴하게 지나갔는지, 왜 사고로부터의 구조가 아니라 살자 시도의 구출로 표현하였는지.

나는 추한 방구석 독자답게 감독이 책을 제대로 읽었는지 의심했다.


소설 중 침입자의 아내 새라는 내가 굉장히 애정하는 캐릭터이다.

그녀는 소설에서도 영화와 같은 끔찍한 외형으로 묘사된다. 비현실적인 체급, 문어 같은 손. 지적 장애인으로 생각되는 행동들.

처음에는 괴물 같은 외형에 반감이 생기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포효하고 후에 예쁜 들꽃과 나비를 보며 즐거워한다. 감정이 메마른 침입자와 반대되는 캐릭터로써의 역할을 하며 행복을 추구하는 사랑스러운 묘사가 있는데 영화에선 처음부터 끝까지 그냥 괴물로 묘사되었다.


이 영화엔 장점이 많다.

동양적인 명상과 소리의 표현.

군침 도는 된장찌개, 국수 그리고 차.

감정을 극대화하는 카메라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

다소 억지스러운 이상한 성격을 가진 침입자 역의 김홍파 선생님의 연기는 굉장히 난이도 높은 역할이라고 생각되는데 아주 만족스러웠다. 특히 부부 식사 중 샤우팅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영화 파묘처럼, 중간까지는 좋았는데 그 이후가 아쉬웠다.

그럼에도 소설을 재밌게 봤다면, 영화는 추천한다.

내가 상상한 세계가 그래픽으로 구현되어 눈앞에 나타나는 것은 대단히 즐거운 경험이다.


*

배우 장영남은 남사친이 없다고 한다. 조금만 친해지면 다 고백을 해버려서 못 만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출연한 영화나 드라마에서 대체로 미인의 이미지로 나오지는 않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아주 아름답게 나온다.

**

내가 영화를 보지 않은 상태에서는 친구들에게 소설을 읽지 말고 영화를 보는 게 더 좋을 것 같다고 했으나,

영화를 보고 나니 소설을 먼저 보는 것이 훨씬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