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시간관계상 일요일에 갈 수밖에 없었다.
하루종일 돌아봐도 반도 보기 힘들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고,
주말에는 이동하기 힘들 정도로 사람이 많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오픈런을 해서 사람들이 쌓이기 전에 다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10시 오픈이라 9시 59분쯤 도착하게 출발했는데 현장은 아이돌 콘서트장과도 같았다.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C홀 입구, 출구 및 모든 공간에 사람이 가득 차 있었고, 안내원의 안내에 따라 복도로 D홀 출구 쪽으로 쭉 이동했다.
이 줄의 끝은 어디일까. 이 줄을 찍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생각되는 순간 D홀 출구로 쏙 입장을 했다.
대기없이.
?
C홀쪽에 줄 선 사람들은 뭐지
아무튼 들어갔다.
나는 처음부터 D홀만 집중적으로 구경할 예정이었는데 운이 좋다.
서점에서도 늘 볼 수 있는 대형 출판사의 책과 행사에 별로 관심이 없다.
이 행사는 올해 당장 망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고 아무도 모르는 그런 출판사들을 보는 것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작년에도 소형 출판사에 충격을 많이 받았는데 올해도 그 맛을 보고 싶었다.
제일 처음 본 그림책과 컨셉과 위트가 좋았던 시집 82.7
처음 본 책이 가장 좋을 줄은 몰랐는데 이 그림책은 충격적으로 좋았다.
아 살걸.
첫 책을 샀다간 한 책장을 사게 될까 봐 참았는데 실수였다.
낙서처럼 그린 그림이지만 과장된 표현과 단순한 터치가 너무 좋았다.
마티스랑 비슷한 점도 있지만 그 당시엔 그렇게 생각 못 했다.
이 책 이름이 뭡니까. 검색해도 안 나옴.
82.7
가족을 소재로 쓴 시집이다.
엄청 인상적이진 않았지만 가족으로 시집 한 권을 써낸 점이 좋았다.
독자가 30살이라고 가정하고, 부모님을 한 달에 한 번 본다면 앞으로 볼 날은 1년이 채 안 된다. 뭐 이런 시가 중간에 있었는데 30살이라 타격이 있었다.
한 주제로 시집을 써낼 때 시도할 수 있는 좋은 장치를 배웠다.
책의 끝에 재밌는 이스터에그도 숨어있다. ebook으로는 알 수 없는 즐거움이다.
미성년자들이 만든 출판사가 있다고? 뭐?
평균 연령이 18세래? 진짜?
땅콩빵~ 땅콩빵~
라디오 CM송마냥 저걸 육성으로 1분마다 반복했는데 정신이 살짝 나갈 것 같았지만 복근으로 버티면서 시집 한 권을 집었다.
시집은 취향이 너무 극명하게 나뉘어서 꽤나 유명한 작가의 시집도 하나도 재미없었던 적이 많다.
시집을 잘 보지는 않지만 이때까지 내 마음에 드는 시집을 발견한 적이 그냥 없다.
그런 여고생들이 나랑 가장 맞지 않는 부분이 시가 아닐까 생각해서 시집을 집어든 점도 있다.
몇 개 읽고 '별로네'하고 지나가려고.
미리 스포를 하자면 그 책은 내가 전시에서 유일하게 구입한 책이 되었다.
아니 여고생이 시를 왜 이렇게 잘 써?
오른쪽 책은 'Eat HongKong'
먹는 것을 너무 사랑하는 작가님께서 홍콩에 가서 하루에 10가지씩 먹으면서 먹지도를 기록한 책이다.
홍콩에서 유명한 육포를 연상하며 육포식 포장을 한 점이 너무 좋았다.
내 방문의 목적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책 중 하나이다.
작년 나에게 캘리그래피의 참맛을 가르쳐주신 강병인 작가님이 또 참가하셨다.
작가님은 어제 와서 사인하고 가셨다고 해서 아쉬웠으나 직원분이 캘리를 좋아하셔서 얘기를 많이 했다.
책 속 작품도 찍어도 된다고 하셔서 싱글벙글하며 다 찍었다.
춤으로 그린 춤
한 글자 아트가 기가 막히다.
이거에 반해서 붓펜을 사서 노트에 끄적였었지.
토끼로 그린 토끼
너무 좋아
우리 조카는 이 토끼도 좋아할까?
낯선 곳에서 보니 반갑더라고
폐장 1시간 전쯤에 그림책을 보기 시작했는데 사진을 이거밖에 못 찍었다.
좋은 작품은 많았는데 다들 짐 싸서 집에 가는 분위기라 나도 급했나 보다.
야구의 대주자라는 아주 생소한 주제로 그림책을 낼 수 있다는 생각은 못했다.
누가 1루에 나가면 교체해서 그저 달리기만 하는 대주자. 그의 시점에서 쓴 그림책
'이걸 누가 알아. 이게 팔릴까'라는 생각은 안 하고 냅다 책을 찍어버리는 기개를 높게 산다.
내가 찍은 그림책은 이거밖에 없으니까, 누구 하나라도 이 책을 기억했으니까 성공한 게 아닐까?
아님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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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찌라시와 책갈피, 명함, 스티커로 마무리
서점에 왜 돈을 내고 가는가
단 한 명의 작가만 있어도 기꺼이 돈을 내고 그 작가의 얘기를 들을 의향이 있다. 나태주 작가님의 90분짜리 강연뿐 아니라 어떤 무명작가와 생각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말이다. 그런 작가 수 백 명을 모아놓은 것이 서울국제도서전이다.
지방에 계속 살았다면 알지도 못했을 것이고, 알아도 못 갔을 텐데 이런 행사를 쉽게 누릴 수 있는 건 큰 축복이다.
올해도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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