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에 엄마가 결혼식장 예약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 엄마가 큰 동창회를 하나보다.’
저는 혈육의 결혼식이라는 경우의 수를 생각지 못한 채 그렇게 그 날의 대화를 잊었습니다.
몇주가 지나고 그게 오늘의 결혼식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그때 깨달았죠.
‘아. 누나가 만나는 남자가 있구나.’
저희 남매는 이런 사이입니다.
제 핸드폰에 저장된 누나의 이름은 ‘누나2’입니다. 저한테는 누나가 2명 있거든요. 누나는 아마 엄마아들이나 이름 석자 정도로 저장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저희 남매는 이런 사이입니다.
누나랑 엄마는 지금 적잖히 당황을 했을겁니다. 누나한테 보여준 대본이랑 너무 다를거거든요.
저는 이날을 위해 온가족을 철저히 속였습니다. 화목한 가정의 재미없는 대본을 써서 보여주었거든요.
저는 취미로 글을 쓰기 시작한지 1년정도 됐고 웃음에 대한 욕심도 많은 사람입니다. 꼭 이런 큰 무대에서 사람들을 웃기고 싶었어요.
그리고 아까 말씀드렸듯이 이 자리가 망하든 말든 크게 상관없는 관계이니 오늘은 더더욱 좋은 기회이죠.
하지만 혹시 오늘의 행사가 망할까봐 미리 사과를 하겠습니다.
미안해 누나. 나의 돌발행동으로 분위기를 망쳐버렸어. 다음 결혼식 때는 진짜 잘해볼게.
괄호열고 이때 장내에 충분히 소란스러울만큼의 웃음과 환호가 없다면 황급히 마무리하고 내려온다. 괄호닫고.
제가 지켜본 누나는 강한 주관과 확고한 신념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누나는 몇 년 전에 결혼은 안 하고 평생 엄마랑 같이 살겠다고 선언을 했습니다.
신랑이 그런 누나의 마음을 변하게 할 만큼의 뭔가가 있나봅니다.
누나는 선택에 후회를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지금 옆에있는 신랑도 후회하지 않을 선택일 것이고, 누나는 그렇게 만들어나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그러더라고요. 결혼은 과연 축하할만한 일인가.
다만 오늘 이 순간이 그 질문에 대한 고찰을 하기에 적합한 자리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저도 결혼을 안 해봐서 아직 답을 모르기에 웹툰작가 이말년님의 말씀으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결혼 생활을 어떻게 지혜롭게
해야 하는지는
저도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단지 어렴풋이 느낄 뿐입니다.
그냥 가장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
내가 한 행동을 지켜봐 주고
나도 그 사람의 행동을 지켜봐 주면서
서로만 아는 에피소드들을 쌓아가는 재미가
결혼 생활이 아닌가 하고요.
온라인 게임 롤(LOL)이나 하스스톤을 하면
서러운 일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혼자 당하면 슬프지만
그 억울한 일을 누군가 같이 목격했다면
웃으면서 털어 버릴 수 있는
추억이 되기도 합니다.
결혼 생활이란 서로가 서로의 증인이 되어 추억 블록을 모아가는 것.
억울한 일을 억울하지 않게 지켜보는 것.
무플인 서로의 글에 댓글 한 개 적어주는 것.
오늘 따라 평소와 다른 상대방에게 갸우뚱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결혼 축하합니다.
2024년 6월 1일
다음 축사는 별로 하고 싶지 않은 동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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