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오후 5시경 독서실에 가고 있었다.
“내가 저기 가서 뭐라 그랬는 줄 알아?!”
한 할머니가 약간 격양된 목소리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
“ㅇㅔ?”
‘저기’가 가리키는 곳은 한 편의점이었고 밖에 2L 6개 들이 생수가 여댓개 쌓여 있었다.
“아니 이렇게 햇빛이 내려 쬐는 날에 물을 밖에 내놓으면 플라스틱이랑 자외선이랑 만나서 독물이 되잖아~~! 그걸 저기서 팔고 있는 거야~~! 그걸 말해도 옮기지도 않고~~ 독물을 ~~~”
“아 그래요? 몰랐네요”
“아니 그것도 몰라? 학생이야? 나는 일흔아홉 살인데도 아는데 왜 그런 것도 몰라?”
“아 예 ㅎ 고맙습니다 ㅎㅎ;”
재밌다.
오늘도 귀찮음을 이기고 외출을 하니 재밌는 에피소드 하나가 생기는구나.
할머니가 원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정의를 실현하는 당신에게 동조해 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일까. 당신의 선한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까. 자신의 상식을 뽐내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이 모든 것일까.
어찌 됐든 할머니는 좋으신 분이다. 하지 않아도 될 귀찮은 행동을 굳이 편의점 알바생에게 전달하기도 했고, 굳이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시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신념이나 상식을 가지고 선한 행동을 한다. 나는 그들을 나쁘게 보고 싶지는 않다.
저번에는 책이 안 읽혀서 한강까지 가서 책 읽고 돌아오는 길에 박xx씨가 기차비를 빌려달라고 했었지.
또 그 저번엔 밤에 집에 경찰이 찾아와서 여자의 비명소리를 듣지 않았느냐고 물어보더라.
또 이 전에 산책할 때는 고추를 뗀 형 같이 생긴 스트리머 무리가 길거리 방송을 하고 있었고
또 얼마 전엔 노란 쫄쫄이와 흰색 쫄쫄이를 입은 사람이랑 카메라맨까지 총 셋이서 콘텐츠를 찍고 있었지.
이런 얘기를 친구에게 하니 그 친구는 몸서리를 친다.
자신의 일상에 불규칙적으로 사람이 침투하는 것이 너무 스트레스받는다고 한다.
난 이런 이벤트가 너무 즐겁다.
처음 왔을 땐 이 동네가 별로였는데
요즘은 점점 좋아지고 있다.
오히려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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