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수많은 전단지를 받게 된다. 문득 <전단지는 받아야 하는가> 이에 대해 각자 어떤 의견인지가 궁금하여 글을 쓰게 되었다.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적어도 7년 이상 전부터 나는 전단지를 받지 않았다. 근거는 1. 귀찮아서 2. 필요 없어서 3. 환경보호 등등이 있겠으나 이러한 이유가 내게 딱히 중요하진 않다. 내가 받지 않는 이유는 하나의 심술이나 반항심이다.
“그것 좀 받아주기가 어려워?”라는 질문에,
“아니 받는건 쉽지. 안 받는 게 어려운 거야. 네가 전단지 받는 이유가 뭐야. 그분이 불쌍해서? 그분이 힘들까 봐? 그 정보가 진짜 필요했어? 사실은 네 마음이 불편해서 아니야? 난 골프 치지도 않을 거고 필라테스도 안 할 거고, 그 삼겹살 집에 가지도 않을 건데 왜 받냐고. 환경 파괴 해가면서 네 마음 편하자고 받는 거 아냐? 나도 받는 게 편해. 받는 게 내 신경과 감정이 덜 쓰인다고. 하지만 이 마음에 저항하면서까지 거절하는 거야.”
이렇게 입 밖으로 꺼낸 적은 없지만 조금 과격하게 표현하자면 내 생각은 이러했다. 나는 이 논리가 마음에 들었다. ‘안 받는 게 더 어렵다’를 방패로 세워서 모든 전단지를 거절했다.
이젠 전 직장이 되었으나 회사 다닐 때 항상 점심 먹으러 가는 길에 매일 똑같은 식당 전단지를 주는 분이 계셨다.
짧은 기간 동안 5회 이상 자주 만나는 게 되면서 화가 났다. 그 식당 주인에게 화가 났다. 이걸 왜 매일 똑같은 곳에서 똑같은 시간에 나눠주게 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최대한 새로운 사람을 찾아 전단지를 나눠주는 게 효과적인 방법인데 그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가짜 노동을 시키고 있는 것이 싫었다.
그 당시에는 인지하지 못했으나 어느 날부터 그 길을 지나는 것 자체가 작은 스트레스가 되어왔던 것 같다.
스트레스가 점점 선명해가던 그때, 직장동료 T가 웃으며 전단지를 받았다. 다음과 같은 멘트를 덧붙이며
“ㅎㅎ 감사합니다. 아유 하나 더 주세요, 저희 여기 자주 가요.”
큰 충격을 받았다. 세상이 밝아졌다. 그냥,, 그냥 좋았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수많은 전단지를 거절했는가. 환경 보호에 별로 관심도 없으면서 사실 그저 논리적 우월감을 느끼기 위해서 안 받은 것은 아닌지 많은 생각을 들게 했다.
사실 중요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 아닐까.
적어도 그 순간에 그 마음 앞에서는, 그깟 환경보호, 그깟 거절할 용기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도 아직 잘 모르겠다.
고작 그런 이유로 전단지를 받을 것이냐.
잘 모르겠다.
이 일이 있고 나서 몇 번 전단지를 받아 보았다.
음 뭐 더 마음이 편하진 않았다.
몇 번은 전단지를 거절해 보았다.
이 또한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저 입안에 혓바닥이 어디 있는지 인식하고, 숨 쉬는 것을 인식한 것처럼 어떤 선택을 해도 이전보다 더 불편해질 뿐이었다.
"너는 지금부터 숨을 쉬는 것이 수동이 된다"
"너는 지금부터 입안에 혀를 어디 두어야 할지 인식하게 된다"
"너는 내일부터 전단지를 받을지 말지 고민하게 된다"
나만 당할 순 없지.
이 글은 타인을 어떻게 대할 것이냐로 마무리된다.
나는 사실 T처럼 유쾌하고 따뜻하게 전단지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다.
무작정 T를 따라 하는 것이 정답이 아니라는 소리다. 내가 할 수 있는 나의 방법을 고민해 보아야겠다.
전단지를 받지 않고 따뜻함을 전할 수 있는 또 다른 좋은 방안이 있다면 그게 더 좋은 것일 수도 있겠다만 나는 잘 모르겠다.
그저 지나가는 타인에게 조금 더 따뜻한 말과 행동을 전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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